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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해방 후 신흥무관학교의 계승 - 신흥대학 (경희대학교의 전신)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1.04.18 조회 : 2962
※ 이 자료는 경희대학교총민주동문회에서 제작한 신흥무관학교 소책자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차 례

1. 신흥무관학교를 빛낸 주요 인물과 졸업생
2. 우당 이회영 가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3. 석주 이상룡 - 대륙에 뿌린 장부의 한
4. 안동 내앞마을의 항일독립운동
5. 만주의 항일독립운동기지 - 신흥무관학교
6. 경학사
7. 신흥강습소 개교 - 1911년 6월 10일
8. 광야에서
9. 청산리 전쟁 -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의 활약
10. 신흥학우단
11. 쏘베차의 백서농장
12. 해방 후 신흥무관학교의 계승 -신흥대학(경희대학교의 전신)
13. 신흥무관학교 교가




신흥무관학교 졸업자들은 신흥학우단을 만들어 활동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제1군영인 합니하 신흥무관학교에 이어 신흥학우단이 주동이 되어 심산 밀림고원에 제2군영을 만들어 정예부대를 양성하기 위한 특별군영을 만들었다.
이 군영이 통화현 팔리초 쏘베차에 세운 백서농장이며 백서(백두산의 서편이라는 뜻)농장의 장주(庄主)가 바로 일송 김동삼이다.
원병상의 “신흥무관학교”에는 이곳은 사람의 발자취가 닫지 않는 밀림지대로 곰, 멧돼지, 오소리 등 산짐승이 득실거리는 깊은 산골짜기로 이곳에 막사를 짓고 큰 뜻을 품은 동지들이 모여들어 새와 짐승을 벗 삼아 스스로 밭 갈고 나무하는 농사꾼이 되어 도원결의의 굳은 맹세를 방불케 하였다고 한다.

백서농장은 중국 측을 의식하여 농장 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 사실상의 군사기지나 다름없었다.
농장에서는 정예 병사를 기르기 위한 훈련에 주력하고, 농사일을 겸하는 병농일치(兵農一致)로 군량을 비롯한 대부분의 생필품을 자급자족했다.
교통이 불편하고 물자가 부족하여 영양실조와 각종 질병으로 시달리다가 1919년 3·1운동 이후 한족회의 지시로 백서농장의 문은 닫았지만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의 혹독한 군사훈련과 극한 상황에서의 값진 경험은 이후 항일독립전쟁의 밑거름이 되었다.


우당 6형제 중 혼자 생존한 이시영(우측 중절모 쓴 분) 선생이 1945년 11월 5일 상해공항에서 임정요인과 함께 귀국길에 오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1945년 우당 일가가 압록강을 건넌 지 35년 뒤, 꿈에 그리던 해방을 맞았다. 하지만 이들 형제들 중 해방 후 조국 땅을 밟은 이는 부통령을 지낸 5남 이시영 뿐이었다. 이시영은 해방이 되자 국내로 돌아와 신흥무관학교의 재건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미군정 아래서 미흡한 일제 청산과 민족정통성의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족교육이 필요한 시기였다.

따라서 이시영은 '신흥무관학교 부활위원회'를 조직하고 1947년 2월, 신흥무관학교의 교명(校名)을 그대로 이어받아 민족교육의 상징인 신흥전문학원(新興專門學院)을 설립한다. 그리고 그해 7월 19일에는 신흥무관학교 선배들이 학교가 있던 각황사 터 (종로구 수송동)에서 모임을 가지며, 신흥전문학원이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하였음을 내외적으로 천명했다.

이후 신흥전문학원은 1949년 2월 15일 재단법인 성재학원 신흥대학(新興大學)으로 인가받고 1949년 7월과 1950년 5월에 각각 1 · 2회 졸업생을 배출한다. 하지만 조국 독립을 위해 모든 가산과 열정을 바쳤던 성재학원의 신흥대학은 한국전쟁이라는 혼란기에 경영난으로 1951년 5월 18일 조영식(전 경희대학교 학원장)에게 인수되고, 1960년 3월 경희대학교(慶熙大學校)로 교명이 바뀌면서 지금까지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황원섭 15/08/25 [03:1] 수정 삭제
게재된 내용 중에 중요한 내용이사실과 차이가 있습니다. 1951년 설립자 이시영부통령이 이승만대통령과의 정치적 대립으로 부통령을 사임하자 조영식 이사장이 비정상적으로 학교법인에 참여하여 당시 학장과 이사진을 교체하여 법정투쟁이 있었고 이규창 학장이 서거하여 분규가 일단락 되었습니다. 신흥대학교는 신흥무관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 후신이고 경희대학교는 교명을 개명한 것인데 신흥무관학교역사가 경희대학교의 역사에서 삭제 훼손되어 사회정의와 역사적 정통성에서 볼 때 중대한 과오를 범하고 있습니다.
오경현 15/09/07 [06:1] 수정 삭제
안녕하세요 경희대학교 대학의소리 방송국 소속 기자입니다. 몇가지 궁금한게 있어서 질문드릴려고 하는데요. 연락처 남겨주실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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