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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당 이회영 가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1.04.18 조회 : 4274
※ 이 자료는 경희대학교총민주동문회에서 제작한 신흥무관학교 소책자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차 례

1. 신흥무관학교를 빛낸 주요 인물과 졸업생
2. 우당 이회영 가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3. 석주 이상룡 - 대륙에 뿌린 장부의 한
4. 안동 내앞마을의 항일독립운동
5. 만주의 항일독립운동기지 - 신흥무관학교
6. 경학사
7. 신흥강습소 개교 - 1911년 6월 10일
8. 광야에서
9. 청산리 전쟁 -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의 활약
10. 신흥학우단
11. 쏘베차의 백서농장
12. 해방 후 신흥무관학교의 계승 -신흥대학(경희대학교의 전신)
13. 신흥무관학교 교가

 

로댕의 조각품 <칼레의 시민>


프랑스와 영국이 백년전쟁을 치르고 있을 때,
프랑스 남부 해안 도시 칼레를 점령한 영국군은 이런 조건을 내걸었다.
만약 칼레 시를 대표하는 여섯 명이 목숨을 내놓으면
나머지 모든 시민을 살려주겠다.
이런 조건에 대해서 칼레 시민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려 나섰던 그 여섯 명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당대 칼레시를 대표하는 귀족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유명한 '칼레의 시민(The Burghers of Calais)'이다.
사회 지배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흔히 이 칼레의 시민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백년 전 우리에게도 칼레의 시민상을 떠올릴 만한 일가족이 있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되자 돈과 권력을 모두 버리고 망명길을 택했던
이회영과 그 6형제들이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나라를 빼앗기자 망명을 논의하는 우당 6형제


독립군 기지 세우고자 전 재산 처분 망명길

우당 이회영은 1910년 8월 만주 서간도 지역을 둘러보고 돌아온 뒤, 가족회의를 열어 가문의 집단 망명계획을 논의했다.
그 자리에서 백사(白沙) 이항복의 후예인 이들 6형제는, 교목세신(喬木世臣: 집안 대대로 중요한 지위에 있어,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하는 신하)으로서 대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지언정, 집안이 왜적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구차하게 도모하는 것은 불가(不可)하다고 했다.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지자 많은 양반귀족들이 자신들의 기득권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일제에 협력하고, 독립운동은 소위 ‘상놈’들이나 하는 것으로 일제가 선전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삼한갑족(三韓甲族)의 명예, 부귀영화도 모두 버리고 우당 이회영 6형제는 망명길에 오르기로 했다.

지금의 명동 YWCA 건물과 명동성당 일부가 이회영 일가가 살던 곳이다. 영의정 이유승의 양자인 둘째 형 이석영의 만여 석 농지와 가옥을 처분한 돈을 포함한 약 40만원, 현재 화폐가치로 따지면 600억원 (소값으로 환산) 내지 2,000억원(땅값으로 환산)의 재산이었다.

마침내 그 해 겨울, 이회영 6형제와 가족들은 서간도에 독립군기지를 세워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망명했다. 우당의 일가가 말을 재촉하며 얼음과 눈길을 뚫고 한만(韓滿) 국경, 압록강을 건넌 날은 1910년 12월 30일 이었다. 그야말로 최초의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제(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의 집단적 실천이었다.


동서 역사상에 국가가 망할 나라를 떠난 충신 의사가 수백 수천에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당 일가족처럼 6형제 가족 40여 명이
한마음으로 결의하고 일제히 나라를 떠난 일은 전무후무한 것이다.
장하다 ! 우당의 형제는 그 형에 그 동생이라 할 만하다.
6형제 절의(節義)는 참으로 백세청풍(百世淸風)이 될 것이니,
우리 동포의 가장 좋은 모범이 되리라.

-이상재-

우당 6형제가 살던 옛터는 지금의 명동 YWCA가 있는 약 6천여 평 일대였다.
1910년 6형제가 만주로 망명을 하자 이 집은 일제 총독부가 몰수하였다.
총독부는 이를 일본의 애국부인회로 기증하였고, 애국부인회는 이 집터를 다시 일본 YWCA 경성본부에 기증하였다.
그리고 해방이 되면서 이 재산은 한국 YWCA로 넘어가게 되었다. (우당기념사업회, 자료집 ‘우당 이회영, 애국의 길을 묻다’ 중에서)

2007년 우당 이회영의 호로 새롭게 명명된 명동의 ‘우당길’

한국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보여준 이회영 가문의 옛 집터 표석



이회영 선생은 려순감옥에서 순국
조선족으로 유일하게 혁명열사로 인정


그동안 이회영 선생은 1932년 11월 17일 중국 대련수상서(大連水上署)에서 유치 중, 교살(목매 죽음)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1932년 11월 8일, 이회영 선생은 만주에서 중국과의 항일공동전선 연락기지와 지하조직망을 구축하기 위해 몸소 나서겠다며 상해를 출발한다. 만 65세 노인이 가슴에 권총을 품은 채 무장투쟁을 결심하고, 상해 황포강 부두에서 아들 이규창의 전송을 받으며 영국 선적의 남창호 제일 밑바닥인 4등 선실에 자리 잡은 것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하지만 북경을 거쳐 대련을 경유하던 중, 이회영 선생은 대련수상경찰서 일경에 체포되어 려순감옥으로 이송된다. 북경에 있던 동북민중항일 총지휘부는 이 소식을 듣고 동북의용군 사령부의 김소묵, 김효삼, 양정봉, 문화준 동지를 보내 구출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 했다. 곧이어 11월 17일 려순감옥 안에 들어가 있던 조선인이 이회영 선생의 교형 소식을 전해왔고, 김효삼 동지가 딸 이규숙에게 전보로 알려 시신을 거두어 려순화장터에서 화장했다고 한다.

반무충(려순감옥 구지박물관 부주임)은 최근 우당선생 74기 추모식 자리에 참여하여 이렇게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 그동안 중국에서도 이회영 선생이 숨진 곳에 대해 논란이 있었지만, 려순감옥 구지박물관(려순감옥)에서는 우당 선생이 려순감옥에서 교형 당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를 기리는 영정과 사진 등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려순감옥 박물관에는 1910년 교형 당한 안중근, 1936년 고문사 당한 신채호 선생의 영정이 있다.

2000년 1월 12일, 중국정부는 이회영 선생에게 조선족으로는 유일하게 혁명열사증서를 수여한 바 있다


북경에서 항일 활동 당시의 우당 이회영
 
중국 정부가 이회영에게 수여한 혁명열사증서

일제 경찰에게 체포 당시 이회영 선생이 입고 있던 유품 (독립기념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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