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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신흥강습소 개교 - 1911년 6월 10일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1.04.18 조회 : 4459
※ 이 자료는 경희대학교총민주동문회에서 제작한 신흥무관학교 소책자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차 례

1. 신흥무관학교를 빛낸 주요 인물과 졸업생
2. 우당 이회영 가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3. 석주 이상룡 - 대륙에 뿌린 장부의 한
4. 안동 내앞마을의 항일독립운동
5. 만주의 항일독립운동기지 - 신흥무관학교
6. 경학사
7. 신흥강습소 개교 - 1911년 6월 10일
8. 광야에서
9. 청산리 전쟁 -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의 활약
10. 신흥학우단
11. 쏘베차의 백서농장
12. 해방 후 신흥무관학교의 계승 -신흥대학(경희대학교의 전신)
13. 신흥무관학교 교가




만주 항일군사교육의 효시
1911년 6월 10일(음력 5월 14일)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 지역 추가가 마을의 한 허름한 옥수수 창고에서는 감격적인 신흥강습소의 개교식이 있었다. 토착민들과 일제의 의혹을 피하기 위해 비록 강습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지만, 신흥강습소는 독립운동가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결정체였다. 이날로부터 10여 년 동안 약 3,500명의 독립군을 양성한 신흥무관학교, 이 학교에 몰려든 학생들의 수업료와 생활비는 모두 무료였다. 나라의 국권과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싸우려는 청년들에게 돈을 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망명 지사들이 서간도에 온 목적이 항일독립운동과 그 기지를 세우려는 것이었고, 그것과 직결되는 사업이 바로 무관학교의 설립이었다. 따라서 신흥강습소는 중등과정 교육뿐만 아니라 독립운동 전사들을 길러내려는 목표를 갖고 처음부터 군사과를 두었다. 이러한 노력 끝에 1912년 1월(음력 1911년 12월) 신흥강습소 제 1회 특기생 변영태, 이규봉, 성주식 등 40여 명이 졸업했다. 이는 만주에서 독립운동 전사를 배출하려는 군사교육의 효시가 된다.
신흥무관학교는 1912년 봄부터 새로운 터전인 통화현 합니하(哈泥河)로 옮겼다. 물 맑을 합(哈) 이라는 글자 그대로, 합니하는 지금도 깊고 푸른 물줄기가 압록강을 향해 흐르고 있다. 신흥무관학교의 위치는 바로 합니하가 학교 주위를 거의 360도 휘돌아 흐르며, 마치 해자(垓字: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으로 둘러 파인 강이나 연못)처럼 되어 있는 천연의 요새였다.
한편 이곳에서도 외부의 눈을 피하며 독립군을 길러내기 위해 학교의 이름을 대외적으로는 '신흥강습소' 또는 '신흥중학'으로 불렀으나, 학생들과 이주민 특히 군사과에 다니는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무관학교', '신흥무관학교'로 불렀다. 이때부터 '신흥'의 이름은 곧 독립군 무관을 양성하는 기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 (장지락)

신흥무관학교에서 키운 혁명가의 꿈
신흥무관학교가 개교했다는 소식이 알려지게 되자
국내에서도 많은 애국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님 웨일즈의 <아리랑> 주인공 김산(본명 장지락)도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장지락(張志樂)이 동경 유학 생활을 청산하고,
군관학교에 가기로 결심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김산은 신흥무관학교를 다니면서 혁명가의 꿈을 키웠다.

신흥무관학교! 아주 신중한 이름이 아닌가! 하지만 내가 군관학교에 들어가려고 하자 사람들은 겨우 15살밖에 안된 꼬마였던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입학자격 최저 연령이 18살이었다.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아서 엉엉 울었다. 내 기나긴 순례 여행의 모든 이야기가 알려지게 되자, 마침내 학교 측은 나를 예외로 대우하여 시험을 칠 수 있게 했다. 지리·수학·국어에서는 합격하였지만, 국사와 엄격한 신체검사에서는 떨어졌다. 다행히 3개월 코스에 입학하도록 허락 받았고 수업료도 면제받았다.

학교는 산 속에 있었으며 18개의 교실로 나뉘어 있었는데, 눈에 잘 띄지 않게 산허리를 따라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18살에서 30살까지의 학생들이 100명 가까이 입학하였다. 학생들 말로는, 이제까지 이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 중에 내가 제일 어리다고 하였다. 일과는 새벽 4시에 시작하여, 취침은 저녁 9시에 하였다. 우리들은 군대전술을 공부하였고, 총기를 가지고 훈련도 받았다. 그렇지만 가장 엄격하게 요구하였던 것은 산을 재빨리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이른바 게릴라 전술 훈련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강철같은 근육을 가지고 있었고, 등산에는 오래 전부터 단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학우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간신히 그들을 뒤따라갈 수 있었다. 우리는 등에다 돌을 지고 걷는 훈련을 하였다. 그래서 아무 것도 지지 않았을 때에는 아주 경쾌하게 달릴 수 있었다. ‘그 날’을 위해 조선의 지세, 특히 북조선의 지리에 관해서는 주의 깊게 연구하였다. 방과후에 나는 국사를 열심히 파고들었다.

얼마간의 훈련을 받고 나자, 나도 힘든 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으며, 그러자 훈련이 즐거워졌다. 봄이면 산이 매우 아름다웠다.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으며 기대에 넘쳐 눈이 빛났다. 자유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인들 못할쏘냐? - 김산·님 웨일즈의 <아리랑> 중에서 -


<아리랑>의 저자 님 웨일즈
 
1941년 <아리랑> 초판본

김산(본명 장지락: 1905-1938)

본명은 장지락(張志樂). 평북 용천 출생. 일본, 만주, 상하이, 베이징, 광둥, 연안 등을 누비며 중국 혁명을 통한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다. 신흥무관학교를 최연소로 졸업한 뒤 상하이로 가 이동휘 등의 영향을 받았다. 1925년 중국대혁명에 참여하고 두 차례에 걸쳐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으나, 1938년 10월 중국 공산당이 일제의 간첩 혹은 트로츠키파로 몰아 뜻을 펼치지도 못한 채 억울하게 죽었다. 김산이 죽기 1년 전인 1937년 여름, 연안에서 님 웨일즈와의 두 달 동안 22회에 걸친 만남과 기록이 1941년 <아리랑>으로 출간되면서 역사 속에 묻힐 뻔했던 김산의 생애가 세상에 알려졌다. 국내에서는 이데올로기 장벽 때문에 1984년에야 번역본이 나왔다. 1983년 중국공산당이 김산을 처형한 과오를 인정하여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고, 우리 정부에서도 2005년 김산 탄생 100주년을 맞아 독립유공자로 추서했다.



신흥무관학교에서 사용된 교과서

『배달족 강역형세도』안동 출신의 이원태가 지은 지리책, 이 책의 특징으로는 만주지역의 역대 국가들을 배달민족의 같은 계통으로 보고 있다.

『유년필독』1907년 현채가 지은 책, 원래 아동용 책으로 썼으나 일제를 적으로 간주하고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며 청장년에게도 영향을 끼쳐 금서가 된 책이다.

『대동역사』정교가 지은 역사책, 민족의 독립성에 대한 역사적 전통을 세우며 단군조선부터 기술한 책으로 신흥무관학교에서는 이상룡이 편찬해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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