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념사업회 소개 < 인사말



프랑스와 영국이 백년전쟁 중이었던 1347년, 프랑스 남부 해안 도시 칼레를 포위한 영국군은 “만약 칼레시를 대표하는 여섯 명이 목숨을 내놓으면 나머지 모든 시민을 살려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서슬 퍼런 영국군대 앞에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여섯 사람이 있었으니, 그들은 다름 아닌 칼레시를 대표하는 귀족들이었습니다.

로댕의 조각 <칼레의 시민>은 바로 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죽음의 공포 앞에서 고뇌하면서도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100년 전 우리에게도 '칼레의 시민'을 떠올릴 만한 자랑스러운 분들이 있었습니다. 1910년, 일제의 강압으로 병합조약이 체결되자 돈과 권력을 모두 버리고 망명을 택했던 우당선생의 여섯 형제를 비롯해 석주 이상룡 선생, 일송 김동삼 선생 등이 바로 그러한 분들입니다.




1911년 1월 압록강을 건너며, 석주 선생이 읊은 소회입니다. 이처럼 선각자들이 얼음과 눈길을 뚫고 압록강을 건너서 가장 먼저 착수한 과업은 바로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여 무장 독립전쟁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놈들의 통치 아래서는 한시도 살 수 없었던 이들은 1911년 6월 10일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 지역 추가가 마을의 한 허름한 옥수수 창고에서 신흥강습소를 열었습니다. 바로 신흥무관학교가 탄생한 것입니다.

비록 시작은 남의 나라 땅 그것도 보잘것없는 창고였을망정 신흥무관학교가 배출한 졸업생들과 교관들은 이후 청산리·봉오동대첩을 비롯한 독립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조선혁명군, 한국독립군, 고려혁명군, 한국광복군 등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초대교장을 지낸 이동녕 선생이 조회 때 신흥무관학교 생도들에게 역설하였듯이 신흥무관학교는 오늘날 우리 국군이 정통으로 삼아야 할 가치와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 신흥무관학교 100주년을 맞아 많은 사업들을 준비하고 있지만 주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 선생님들과 뜻있는 많은 분들의 지혜를 모아 부족하지만 열과 성을 다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추운 날씨와 불편한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