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념사업회 소개 < 창립취지문
1세기 전 국망지추(國亡之秋)에 국내외의 의병전쟁을 비롯한 모든 무장항쟁은 이곳으로 흘러들고, 경술국치 이후 국내외의 모든 항일독립전쟁은 이곳에서 발원했다고 할 수 있는 곳, 이것이 신흥무관학교입니다.

올해는 항일무장투쟁 전사의 양성기관이며 명실상부한 독립운동의 요람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애국지사들은 1911년 6월 10일 고조선과 고구려의 혼이 배인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지역 추가가 마을의 허름한 옥수수 창고에서 신흥강습소를 세웠습니다.

일제와 토착민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강습소’란 이름을 달았지만 신흥무관학교가 설립되는 순간입니다. 신흥무관학교는 자치적으로 조국독립운동의 전사를 양성하고자 낮에는 식량자급을 위해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조선역사를 비롯하여 무장투쟁의 군사훈련을 가르쳤습니다.

애국지사들은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가산을 정리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국내외의 우국청년들이 뜻을 받들어 모여들었습니다. 신흥무관학교는 10여 년 동안 수천여 명의 전사를 길러내고 독립운동가 양성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신흥무관학교가 배출한 인재들은 만주·러시아령·중국 관내의 무장독립운동의 중심이 되고,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비롯하여 청산리와 봉오동대첩을 이룬 핵심이 되었습니다.

조선혁명군·의열단·한국독립군·고려혁명군·한국광복군 등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도 어김없이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입니다.
애국지사들의 비밀결사 신민회가 1909년 만주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기로 한 결정에 따라 우당 이회영, 석주 이상룡 등 애국지사들은 모든 기득권과 명예와 부귀를 버리고 산 설고 낯선 만주 삼원포에 교육기관 경학사를 열고, 이어 신흥무관학교를 세웠습니다.

신흥무관학교의 신흥은 신민회의 ‘新’과 다시 일어나는 구국투쟁의 ‘興’ 즉 ‘신민흥국’(新民興國)의 줄인 말입니다. 다시 새롭게 태어나 민족과 국가를 부흥시키자는 뜻이 담겼습니다.

신흥군관학교는 청년 학도들에게 신식학문과 군사훈련을 가르쳤습니다.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이곳 출신자들의 역할은 어두운 밤의 샛별과도 같았습니다.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우리는 민족과 겨레가 미증유의 국난에 처했을 때 생명과 재산을 바쳐 항일군사교육기관을 세웠던 선열들을 기리고, 그동안 역사에 묻혔던 신흥무관학교의 빛나는 전통과 자주독립의 건학 이념을 살려 통일민족민주국가 건설의 정신으로 잇고자 합니다.

신흥무관학교의 역사연구와 정신계승을 위하여 발족하는 100주년 기념사업회에 많은 참여와 성원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