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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 대장정’ 신흥무관학교와 잊힌 영웅들 [4]
글쓴이 : 신흥무관학교 날짜 : 15.05.18 조회 : 832

중국인들에게 두 분은 전설이었다 

<일요신문>의 이번 ‘창간 23주년, 광복 70주년 기획 2500㎞ 대장정’은 100년여 전, 광활한 이국땅에서 전개됐던 우리 선대의 희생을 더듬어 가는 과정이었다. 누군가는 살아남아 그토록 꿈꾸었던 광복의 환희를 만끽했지만, 많은 독립투사들은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희생됐다. 이번 호에서는 참혹하게 희생된 두 영웅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주인공은 이진룡 장군과 양세봉 장군이다. 

[4탄] 이진룡·양세봉 장군 

<일요신문> 취재진은 지난 4월 8일,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남단에 위치한 콴덴(寬甸)을 찾았다. 이번 대장정에 동행한 조선족 출신 향토사학자 전정혁 선생은 “이번 여정에서 반드시 가 봐야할 곳이 있다”며 취재진을 콴덴의 한 저수지 근처로 이끌었다. 그 저수지 주변에 이진룡 장군의 의열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중국 정부가 세운 양세봉 장군 흉상에 향토사학자 전정혁 선생이 참배를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100여년 전 콴덴 주민들이 세운 이진룡 장군 의열비(오른쪽)와 그의 부인 우씨의 열녀비.


그곳은 지난 2012년 이진룡 장군의 후손들이 중국 정부의 비준을 받아 기념원으로 조성했다. 기념원 입구엔 이진룡 장군의 행적과 사적지임을 알리는 거대 비석 두 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 비석을 지나 오르막길에 오르자, 이진룡 장군을 기리는 의열비가 우뚝 서 있었다. 옆에는 이진룡 장군의 순국 소식을 듣고 자결한 그의 부인 우 씨를 기리는 일종의 열녀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아직은 쌀쌀한 대륙의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주변 풍경이 기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누군가 기념원 주변에 새하얀 종이꽃들로 아름답게 장식을 해놨던 것. 자못 장관이었다. 전정혁 선생은 “이 꽃들은 근처 초등학교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장식한 것”이라며 “이외에도 인근 학교에선 격년마다 이진룡 장군을 기념하는 백일장이 열리고 있다. 그만큼 이진룡 장군에 대한 이곳 콴덴 주민들의 존경심과 사랑은 대단하다”라고 치켜세웠다. 

위 사진은 이진룡 장군 기념원 앞 비석.  

이진룡 장군의 열사비도 1918년 일제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은 이듬해 콴덴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해 세운 것이었다. 도대체 이곳 콴덴 주민들은 왜 이 조선인에게 100년이 다 되도록 무한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는 것일까. 
 
1879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난 이진룡 장군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본격적으로 의병을 조직했다. 의병을 일으킨 곳은 자신의 고향 평산이지만, 후에는 그 활동 무대를 강원도 철원, 평강, 황해도 배천 등으로 넓힌다. 이 장군의 부대는 1910년 일제의 주요 전략물자 교두보였던 경의선 철로를 파괴하는 등 그 용맹을 전국에 떨쳤다. 이에 일제 역시 그를 잡고자 혈안이 됐다. 
 
일제의 포위망이 좁혀지자 그는 결국 1911년 자신의 지휘권 전부를 동료에게 넘겨준 채, 중국으로 망명한다. 그 주요 근거지가 바로 이곳 콴덴이었다. 콴덴에서도 그는 애국청년을 모집하고 군자금을 모금, 포수단을 조직해 의병활동을 꾀했다. 무엇보다 곳곳에 분산돼 있었던 반제 무장 세력들을 규합해 국내 침공을 감행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의 용맹함은 이국땅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특히 이진룡 장군의 힘과 체력은 그를 쫓던 일본군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죽했으면 이진룡 장군의 발바닥에 ‘짐승의 털’이 달려있다는 괴이한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험난한 길을 무수히 달려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는 그의 근력과 강철 체력 때문이었다.  

의병장 말년엔 일제의 압박이 점점 심해져 그는 신변을 숨긴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진룡 장군은 인적이 드문 산촌으로 몰래 들어가 오랜 기간 잠복해있었다. 일제는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고 그를 잡고자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바로 그때, 이 현상금에 눈이 멀어 이진룡을 잡아보겠다는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다름 아닌 임곡이라고 하는 조선인이었다. 임곡은 사람의 맥을 잘 짚었다. 마을 곳곳을 다니며 의원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정보를 수집했다. 마을 사람들은 의술에 능통한 그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임곡은 결국 작은 산촌에 신분을 숨긴 채 은거하던 이진룡 장군을 찾아내고야 만다. 일제의 주구 임곡의 밀고로 이 장군의 드라마틱한 삶도 막을 내린다. 

임곡의 첩보를 접수한 일본군은 1917년 이진룡 장군을 체포한다. 이 체포 순간에도 이진룡 장군은 워낙 힘이 장사였던 탓에 일본군 10여 명이 달라붙어 겨우 포박했다고 한다. 이듬해 평양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그의 부인 우 씨는 남편을 따라 곧 자결했다.  

그의 용맹함은 그가 죽고 나서도 지금까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전정혁 선생에 따르면 20년여 전, 이진룡 장군의 의열비 주변에 도로공사가 진행됐는데, 한 인부가 의열비에 손을 댔다가 공사장 폭발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인부가 억지로 의열비를 옮기려 했기에 노한 이진룡 장군이 벌을 내린 것이라고 믿었다. 그때부터 어느 누구도 그 의열비에 손을 대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중국인에게 용맹한 명장을 넘어 영험한 존재로까지 추앙받고 있었다.  
 


<일요신문> 취재진은 또 한 명의 영웅이 숨 쉬고 있는 랴오닝성(遼寧省) 신빈(新宾)의 왕청문(旺淸門)으로 향했다. 왕청문의 한 공터에 널찍한 석조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양세봉 장군의 대형 흉상이 우뚝 서 있었다. 그 높이만 4m가 넘었다. 중국에서 한 인물의 조각상을 세우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이 흉상은 지난 1995년 중국 정부가 그의 항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주요 활동 무대였던 신빈에 건립한 것이다.

양세봉 장군은 중국 동북지방의 항일전쟁사에 있어서 김좌진, 홍범도 장군과 함께 한 획을 그은 명장이다. 특히 그는 중국 의용군과 연합군을 형성하여 활동했기에 중국 현지에서도 손꼽히는 항일지사로 추앙받고 있다. 중국 땅 한가운데, 그것도 정부에 의해 그의 거대 흉상이 세워진 이유다.  

1896년 평안도 철산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양세봉 장군은 1906년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를 흠모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항일무장투쟁에 발을 디딘 때는 1920년 평안도 지역 항일무장단체인 ‘천마산대’에 가입하면서부터다. 그는 1923년, 천마산대의 근거지인 평안도 일대에 대한 일제의 만행과 탄압이 심해지자 중국 동북지방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양세봉 장군은 1932년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에 오른 뒤, 한-중 연합전선을 꾀했다. 무엇보다 일제의 만주 침공이 전개되면서, 자연스레 연합군 형성의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후 중국의용군과 의기투합한 양세봉 장군은 흥경성전투, 노구대전투, 쾌대모자전투 등 200여 차례의 항일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일제에게 있어선 공포의 대상으로, 중국과 조선에선 영웅으로 떠올랐다.  

당시 양세봉 장군이 이끌었던 조선혁명군은 중국의용군에 비해 비록 그 숫자는 적었지만 전투력 면에선 월등했다. 이 때문에 조선혁명군은 하나의 별동대로 여겨지지 않고, 연합군의 각 소대에 배치됨으로서 사실상 연합군의 전투를 이끌었다고 한다. 

이렇게 승승장구한 양세봉 장군 역시 앞서의 이진룡 장군과 마찬가지로 같은 조선인의 배신으로 최후를 맞는다. 양세봉 장군에 의해 참담한 연패를 이어갔던 일본군은 한 가지 꾀를 생각한다. 박창해라고 하는 조선인 밀사를 활용한 것.  

밀사 박창해는 평소 양세봉 장군과 친분이 있던 중국인을 돈으로 매수했다. 그 중국인은 ‘조선혁명군과 중국의용군의 연대와 관련해 의논할 것이 있다’며 양세봉 장군을 모처로 유인해 냈다. 양세봉 장군은 그 당시 수수밭에 몰래 숨겨둔 일본군에 포위되어 총탄을 맞고 전사한다.  

양세봉 장군의 흉상 앞에선 전정혁 선생은 “현재 중국에선 양세봉 장군의 항일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후원 부족으로 벌써 몇 년째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에 의지하기엔 한계가 있다. 양세봉 장군은 그 업적과 비교해 한국에선 여전히 저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랴오닝=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김일성과 양세봉 
 
‘부자’처럼 끈끈한 관계…국내선 외면 
 
양세봉 장군의 묘지는 두 곳이다. 한국 서울의 현충원과 북한 평양의 열사릉에 각각 마련됐다. 서울의 묘지는 가묘일 뿐, 진짜 그의 시신이 안치된 곳은 평양의 열사릉이다.  
 
원래 양세봉 장군의 시신은 1934년 순국 직후 중국 환런(桓仁)에 가매장됐다. 당시 일제는 가매장된 양 장군의 목을 꺼내 사람들 앞에 내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의 목이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1960년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양세봉 장군의 목 없는 시신을 북한을 들여와 안장했다. 현재의 평양 열사릉에 안치된 때는 1986년. 김일성은 해방 직후 양세봉 장군의 부인과 아들을 데려와 북한에 살게 했다. 한국과는 다르게 그야말로 극진한 대접을 한 셈.
 
김일성은 양세봉을 흠모했다. 물론 여기엔 개인적인 인연이 크게 작용한다. 김일성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양세봉과의 관계를 밝혔다. 김일성의 부친인 김형직 역시 항일운동에 투신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김형직은 양세봉과 의형제를 맺을 만큼 가까운 동지였다. 이런 인연으로 김형직이 일찍 죽고 난 뒤 양세봉은 김일성의 학비를 후원했다. 김일성은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양세봉에 대한 존경심과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한때 김일성은 자신의 유격부대와 양세봉 장군의 부대의 합작을 논하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결렬됐다. 하지만 양세봉 장군 사후, 그 부대 출신 상당수가 김일성 부대에 합세하는 등 인연은 계속됐다. 어찌 보면, 양세봉 장군이 중국과 북한에 비해 국내에서 저평가된 배경에는 김일성과의 이러한 관계가 크게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한]

<2015-05-06> 일요신문

☞기사원문: 광복 70주년 기획 ‘2500㎞ 대장정’ 신흥무관학교와 잊힌 영웅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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