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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윤경로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1.11.14 조회 : 1514
신흥무관학교…친일인명사전…한 평생 역사학자의 양심으로 살다

[세계일보]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경술국치 100년이 지났지만 ‘과거사 청산’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지난해 민족문제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민간단체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자 첨예한 대립이 재연됐다. 이후 친일 행정이 드러난 독립유공자들의 서훈이 박탈됐고, 정부는 친일 인사들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고 있다.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든다”고 반발하지만, 친일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대세다. 민간단체들의 ‘역사 바로 세우기’ 움직임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독립군 양성의 산실이던 신흥무관학교 설립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고, 중심에는 윤경로(64) 전 한성대 총장이 있다. 그에게는 시민운동 1세대 활동가, 대학 총장을 두 번 역임한 ‘행정의 달인’, 친일 청산 문제의 ‘선봉장’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이 말에는 연구실을 빼곡하게 채운 손때 묻은 책처럼 그의 삶의 흔적이 오롯이 묻어 나온다.

신학을 꿈꾼 소년… 역사학도가 되다

신학자를 꿈꿨던 윤 전 총장이 역사학도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대학 시절 은사들의 권유에서 비롯됐다.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은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므로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바로 친일 청산의 시작”이라고 강조한다.
윤 전 총장은 “역사학 자체에 매력을 느꼈던 차에 친일문제 등 과거사 왜곡을 통렬하게 비판한 강만길 교수님의 강연은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다”면서 “또한 교육학과 김정환 교수님께서 ‘이 시대에 목사는 많으니 올바른 선생이 됐으면 좋겠다’고 역사학자로의 길을 인도하셨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모든 과거의 역사는 현대사”라는 점을 학문의 화두로 삼았다. 과거의 사실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으며, 이를 토대로 내일을 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윤 전 총장은 역사가의 책임이 크다고 역설한다. 역사가는 역사 해석에서 시대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학문적 좌표이다.

윤 전 총장이 연구실에서 벗어나 사회참여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역사학자라고 연구실에 파묻히는 것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윤 전 총장은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창립 멤버로 참여하며 시민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당시 우리 사회는 이념 투쟁이 격화했지만 민중, 민주, 통일 등 구호를 내세우면서도 당장 서민들의 고통인 부동산값 상승, 경제부정 등 현실 문제는 방치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어느새 시민활동 경력만 20년이 넘었다”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초창기 시민운동가들이 시민활동 경력에 힘입어 현실정치에 뛰어든 것도 그는 곱지 않게 본다.

그는 “저는 교수이지 정치인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그는 본직인 교수이자 역사학자 본연의 직분에 충실했다. “매년 논문 1∼2편을 꾸준히 발표했다. 학자의 길에 충실한 와중에 여가시간을 활용해 사회에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시민활동을 했다.”

교수와 시민운동가 사이에서 ‘주객이 전도’돼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서다.

그의 ‘전공’인 친일 문제로 대화주제를 옮겼다. 그는 “40여년간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은 뒤 독립을 이룬 역사는 흔치 않다”며 “때문에 독립이 요원하리라는 판단에서 그 체제에 순응한 게 친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기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애국계몽운동에서 시작한 우리 민족의 투쟁사는 국권회복, 독립전쟁, 임시정부 등으로 면면히 이어졌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은 친일을 순응과 변절로 점철된 ‘현실의 길’, 독립운동을 저항과 투쟁으로 똘똘 뭉친 ‘역사의 길’로 규정한다. 특히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친일은 명예, 권력, 부를 놓지 않기 위한 비겁한 행위로서 우리 스스로 주권과 국권을 넘기고 일제에 빌붙으려는 결정적인 잘못이라고 성토한다. 윤 전 총장은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다.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바로 친일 청산”이라고 강조했다.

‘역사는 그 민족의 거울’이라는 격언도 우리가 반드시 과거사를 청산해야 하는 이유로 꼽았다. 그는 “친일 인사들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면 당대에는 부유하겠지만 후대에 준엄한 심판을 받는다는 점을 후손들에게 ‘반면교사’로 가르쳐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갖은 위협, 비난 무릅쓰고 ‘학자적 양심’ 지켰다

윤 전 총장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으로 추대될 때 숱한 고민의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한 대학의 총장으로 ‘빨갱이’라는 비난은 물론, 친일 인사들의 후손들로부터 협박도 무수하게 받았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집안 어르신들 중에 친일 인사들이 상당했기 때문에 더욱 부담이 컸다”고 당시 고충을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학자적 양심을 지키기로 했다. “평생 역사를 공부하고, 학생들에게 ‘역사적 진실을 밝히라’고 가르쳤는데 이를 회피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며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게 총장을 두 번이나 지낸 것보다 더욱 보람이 있었다”고 환하게 웃었다.

우리 역사의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그의 노력은 ‘진행형’이다.

국권 피탈 후 1911년 우당 이회영 선생 6형제 등이 만주에 설립한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로 활약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게 신흥무관학교인데 어느새 잊힌 역사가 되고 있다”며 “설립자들은 재산과 기득권을 포기했고,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에 이어 의열단, 광복군에서 활약했는데 광복 후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 속에서 묻혀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윤 전 총장은 우리 국군의 뿌리가 신흥무관학교라는 점을 각인시키는 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군의 뿌리가 미군의 의해 창설된 군대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대한민국 군대의 역사는 가장 멀게는 의병에서 시작해 대한제국 군대, 신흥무관학교, 광복군으로 이어진다”며 “국군의 정통성을 항일운동과 연결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고 역설했다. 윤 전 총장 등의 국군 뿌리 찾기 운동은 서서히 그 힘을 얻어가고 있다. 기념사업회에는 김동신 전 국방장관이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 4월 현지 답사에는 김 전 장관을 포함해 군 장성 출신 10여명이 참가했다.

그는 “애초 6월 기념식 및 시민축제한마당을 육군사관학교 교정에서 열기로 한 것과 7월과 10월 답사 시 현 육사생도들이 참가하기로 했는데 막판에 ‘부담스럽다’는 육사 측의 태도 변화로 무산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회영 선생 6형제는 당시 조선 제일의 갑부로 꼽혔다. 이들 6형제는 당시 40만원(현재가치 600억원 이상)에 달하는 전 재산을 처분해 만주로 망명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로 불린다. 그의 눈에 최근 부실 저축은행사태, 고위공직자들의 비리는 어떻게 비칠까.

그는 “그분들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실 줄 아셨고, 체면과 염치를 지키려 노력하셨다”며 “하지만 우리 시대 대부분의 지도자는 돈과 권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염치없는 사람들”이라고 혹평했다. 윤 전 총장은 “길이 아니면 가지 않았던 우리 선조의 ‘염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며 “지금보다 못 살더라도 도덕성과 윤리의식이 없으면 존경받을 수 없다는 사회질서 확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젊은이들에 대한 ‘당부’로 끝났다. “젊음은 끊임없는 정신적 갈구를 원하는 배고픔과 돈·출세와 멀더라도 자기 성취를 위해 미치는 것”이라며 “민족의 미래와 세계사를 짊어지고 나간다는 꿈과 넓은 눈을 가져야 한다.”

글=장원주, 사진=이제원 기자 strum@segye.com

■ 프로필

●1947년 경기도 양주 출생

●1974년 고려대 사학과 졸업

●1981년∼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2000∼2005년 (사)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소장

●2001∼2003년 사법시험관리위원회 민간대표 위원

●2003년∼(사)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

●2004년∼국사편찬위원회 운영위원, 국가보훈처 공적심사위원

●2005∼2009년 한성대 총장

●현재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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