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실 < 문서자료
<9> 청산리전쟁 -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의 활약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1.04.18 조회 : 2667
※ 이 자료는 경희대학교총민주동문회에서 제작한 신흥무관학교 소책자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차 례

1. 신흥무관학교를 빛낸 주요 인물과 졸업생
2. 우당 이회영 가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3. 석주 이상룡 - 대륙에 뿌린 장부의 한
4. 안동 내앞마을의 항일독립운동
5. 만주의 항일독립운동기지 - 신흥무관학교
6. 경학사
7. 신흥강습소 개교 - 1911년 6월 10일
8. 광야에서
9. 청산리 전쟁 -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의 활약
10. 신흥학우단
11. 쏘베차의 백서농장
12. 해방 후 신흥무관학교의 계승 -신흥대학(경희대학교의 전신)
13. 신흥무관학교 교가



1920년 10월 청산리전쟁 승전 후 상해임시정부에 보고하기 위해 기념 촬영을 하였다.


김좌진부대에 지휘관 파견
홍범도부대의 대한의용군에 편성

신흥무관학교의 교관과 졸업생들은 북로군정서 일선 부대의 간부로 청산리전쟁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1919년 12월에 북간도 지역의 군정부가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로 개편되자, 서간도지역의 서로군정서는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중 정예요원을 북로군정서에 파견했다.

또 신흥무관학교 졸업생 등으로 조직된 서로군정서의 교성대가 대한의용군(대장 홍범도)에 편성되어 청산리전쟁의 승리를 마무리 짓는다. 이같이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은 북로군정서의 지휘관이나 대한의용군의 일원으로 청산리전쟁의 최전선에서 온 몸으로 전투를 치르며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청산리전쟁은 일본군 토벌대에게 커다란 패배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전쟁에 패한 일본군의 보복은 조선인 양민의 학살로 이어졌다. 이에 독립군은 청산리전쟁에 승리하고서도 양민학살을 피하며, 무장역량을 보존하기 위해 전략적인 퇴각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백두산 자락의 안도현에 모여 일제히 국내진공을 개시하려던 독립군 부대는 소만(蘇滿) 국경지대인 밀산(密山)까지 대장정(大長征)에 올라야 했다.

청산리전쟁의 지휘관 - 김훈(중국명 양림)

신흥무관학교 출신으로 청산리전쟁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중국대장정에 참여한 연성대 소대장 김훈(중국명 양림)이다.
김훈은 청산리전쟁이 끝난 뒤 전투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상해임정으로 파견되어 그 기관지인 『독립신문』에 ‘북로아군실전기(北路我軍實戰記) - 김훈씨담(金勳氏談)’을 연재하며 청산리전쟁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항일 무장독립 운동사에 빛나는 청산리 전투 한가운데 있었으면서도 이후 대륙을 흔들며 분출한 중국 혁명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탓에 김훈(중국명 양림)은 한국에서 잊혀졌다. 중국공산당이 국민당군의 토벌을 피해 결행한 2만5천리 대장정에 참여한 한국인은 10여 명인데, 마지막까지 남은 한 사람이 양림이다. 양림은 1936년 2월 20일 홍군 제15군단 75사 돌격대 참모장으로 ‘동정(東征)’ 항일을 위한 황하 도하작전을 마친 뒤 복부에 총을 맞고 전사했다.

1901년(또는1898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양림의 본명은 김훈이다. 1919년 평양에서 3·1 운동에 참여한 뒤, 그 해 가을 신흥무관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그곳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양림은 이듬해 5월 김좌진이 교장을 맡은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의 교관이 된다.

같은 해 10월 그는 1개 중대를 이끌고 청산리 백운평 골짜기 절벽 위에 매복한다. 나뭇가지와 낙엽으로 몸을 숨긴 이들은 독립군이 계곡을 통해 도망쳤다는 허위 정보에 속아 백운평으로 들어선 일본군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엿새 동안 1,000여명이 넘는 일본군을 사살하고 독립군의 완벽한 승리로 기록된 청산리 전투에서 양림은 빗발치는 총탄을 온몸으로 기억한 뒤 이를 당시 상해임정 기관지였던 『독립신문』에 글로 풀어냈다. (한겨레신문의 ‘청산리 숨은 영웅’ 양림 중에서)

댓글달기
도배방지
현재페이지 1 / 1
NO 파일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21 <2017 학술회의 자료집> 신민회 110주년 및 윤기섭 탄생 1 운영자 2017.06.19 107
20 <2016 학술회의 자료집> 러시아, 만주 지역의 독립군 양성 운영자 2016.12.14 226
19 <2015 학술회의 자료집> 신흥무관학교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운영자 2015.06.10 772
18 <2014 학술회의 자료집> 신흥무관학교와 독립군 운영자 2014.08.21 989
17 <2013 학술회의 자료집> 성재 이시영선생 60주기 추념 학술 [1] 운영자 2013.06.13 1224
16 <2012 학술회의 자료집> 신흥무관학교, 어떤 인물들이 참여 운영자 2012.06.11 1524
15 <15> 신흥무관학교와 항일무장독립운동 학술회의 자료집 운영자 2011.05.12 1959
14 <14>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창립대회 자료집 운영자 2011.04.20 2008
13 <13> 신흥무관학교 교가 [2] 운영자 2011.04.18 4684
12   <12> 해방 후 신흥무관학교의 계승 - 신흥대학 (경희대학교 [2] 운영자 2011.04.18 2963
11   <11> 쏘배차의 백서농장 운영자 2011.04.18 2787
10   <10> 신흥학우단 운영자 2011.04.18 2710
9   <9> 청산리전쟁 -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의 활약 운영자 2011.04.18 2668
8   <8> 광야에서 운영자 2011.04.18 2065
7   <7> 신흥강습소 개교 - 1911년 6월 10일 운영자 2011.04.18 4184
6   <6> 경학사(耕學社) [1] 운영자 2011.04.18 3243
5   <5> 만주의 항일독립운동기지 - 신흥무관학교 [1] 운영자 2011.04.18 6008
4   <4> 안동 내앞마을의 항일독립운동 운영자 2011.04.18 2532
3   <3> 석주 이상룡 - 대륙에 뿌린 장부의 한 운영자 2011.04.18 2339
2   <2> 우당 이회영 가문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운영자 2011.04.18 3803
1   <1> 신흥무관학교를 빛낸 주요 인물과 졸업생들 운영자 2011.04.18 6514
 1